[한경 매거진] 잘 다니던 회사 사표내고 당구장으로 간 까닭은? [이태호의 어쩌다 창업]
- 작성일 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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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브이로그] 당구장 변천사로 바라본 스타트업이 정부 규제 파도 속에서 살아남기
[한경잡앤조이=이태호 올댓메이커 대표] 대부분의 창업가들이 어떠한 사명이나, 덕업일치로 창업을 한다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어쩌다 창업한 이들도 있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을 뻔한 뉴스기사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회사를 잘 다니고 있던 2017년 1월, 당구장 금연법 시행 뉴스를 보자마자 ‘기회’라고 생각했다. 문득 대학 때 즐겨 다니던 당구장의 모습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더욱 확신이 들었다.
‘당구장 금연’이 현실화되는 순간 당구장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손님도 남성 중심에서 가족이나 커플 단위로 확대될 것으로 믿었다. 흔히 생각하는 불량한 이미지를 벗을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단순히 흡연이 가능했던 공간이 금연이 된다는 것 그 이상의 변화가 예상되었다. 그렇게 순간 ‘촉’만 믿은 채 마음만 급해 준비 기간 4개월 정도하고 바로 사표를 내고야 말았다.
최근 스타트업 업계는 각종 정부 규제로 술렁이고 있다. 규제에 가로막혀 아예 시작하지도 못하거나, 여러 가지 제약으로 스타트업의 혁신성 저해를 우려하는 요즘이다. 이렇듯 새로운 비즈니스를 기획하고, 실행하기까지는 창업가의 역량 외의 여러 가지 환경적 변수들이 매우 중요하다. 한마디로 역량 그 이상의 운도 따라줘야 한다.
사실 내가 하는 당구장 비즈니스도 스토리가 매우 흥미롭다. 오랜 시간 동안 정부의 각종 규제와 법률에 따라 흥망성쇠가 엇물려 지금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993년까지만 해도 당구장은 원래 미성년자 출입금지였다. 청소년들의 탈선의 장소라는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구시대적인 법적 제재였는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시대적 분위기는 당구장은 그런 곳이었다. 헌법재판소에서 일정연령 미만자에 대한 당구장 출입금지표시의 의무를 규정한 법률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다는 이유로 위헌이라고 결정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1993년 헌법재판소의 ‘18세 미만의 당구장 출입금지’ 위헌 판결 이후 2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당구장은 유해업소라는 인식이 여전했다. 법원은 당구장을 유해한 시설로 판단, 통학로 설립 불가 판결을 내렸다. 바로 ‘교육환경보호법’으로 학교 주변에서 당구장을 개설하려면 지역 교육환경보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인허가를 받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 역시도 해당법령에 의해 학교 인근 당구장 창업이 불가능해 몇몇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당구장 점포개설을 해야 하는 나의 비즈니스에도 위의 법적 규제는 큰 장애물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당구장의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점에서 분명 해당 법은 차츰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치부될 것으로 확신 하고 있었다.
역시나, 규제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변화되게끔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이제 올해부터는 당구장이 학교 주변에도 창업이 가능해졌다. 규제개혁신문고에 접수된 국민건의를 통해, 국무조정실 ‘규제 혁신 10대 사례’ 발표에 중ㆍ고등학교 주변 교육환경보호구역 내 개설할 수 없었던 당구장도 이제 개설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 포함이 돼서 부터다.
당구장은 체육시설이고, 금연구역이며, 유해업소가 아니라는 점이 고려됐다. 아울러 당구가 국제스포츠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등 당구장에 대한 사회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되었다고 이유를 들었다. 이처럼 청소년 출입금지였던 당구장이 학교 통학로에도 개설이 가능한 긍정적인 시설이 되기까지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합리적인 법안의 개정이 뒤따라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구장은 정부의 규제와 법률 때문에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던 대표 업종이다. 2017년 12월. 실내체육시설을 금연시설로 지정하는 ‘당구장금연법이 시행됐다. 당구장 사장들은 그나마 있는 손님마저 사라질까봐 발을 동동 굴렀다. 당구장은 흡연자들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규제를 빠르게 인정하고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엿본 당구장 사장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당구장 금연법‘을 기회로 여기고 당구장 업에 뛰어든 나 역시도 ‘당구장 금연’이 현실화되는 순간 오히려 당구장 창업의 진입장벽이 낮아져, 기존 중장년 남성층의 창업 아이템에서 주부들까지도 확대가 될 수 있으며, 손님도 남성 중심에서 가족이나 커플 단위로 확대될 것으로 믿었다.
금연은 흡연자들에게 불편이지만 비흡연자들을 당구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였다. 이처럼 규제는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지만, 그렇다고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곧 또 다른 변화를 준비해야 할 지경에 처해있다. ‘당구장금연법’에 맞추어 비용을 들여 실내에 흡연부스를 설치했던 당구장들이 보건복지부에서 2025년까지 당구장 안의 설치된 실내 흡연부스 마저 철거하라는 정책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흡연실마저 폐쇄하면 장사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당구장 사장들은 또 전전긍긍 발을 구르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진통과정이고, 시간이 흐르면 안정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또 누군가는 이 현상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여길 것이다.
어차피 사업은 사회 공동체 안에서 실현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독’으로 여겨지는 규제들이 사회적인 큰 테두리 안에서는 ‘약’이 될 수도 있다.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수도 없이 사업 환경은 바뀔 것이고, 그것을 탓하고만 있기보다는 카멜레온처럼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나에게 유리하다.
물론, 나의 사업 역량 외에 대외적인 환경의 변화로 득을 보는 경우도 많다. 내가 당구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만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당구종목이 프로종목으로 추진되었다. 당구프로대회로 인해 많은 기업들과 대중들로부터 다시 당구장이 주목을 받고 있는 요즘이다. 또, 당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이 될 확률이 나날이 높아져 가는데 이 경우 역시 나의 역량 외의 대외적인 긍정적 변화이다.
썰물이 빠졌을 때 누가 벌거벗고 헤엄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파도를 막을 댐을 설치하기보다는 파도를 즐길 수 있는 서핑능력을 키우는 것이 나에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흔들리는 파도 속에서도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나만의 법을 터득하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 같다.
규제는 앞으로도 계속 강화되고, 완화되고를 되풀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해가 도무지 될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규제들도 소비자들의 여론을 거스르진 못할 것을 믿는다.